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흐룰 칸 로디 (문단 편집) ==== 힌두스탄 정복 ==== 2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은 후세인 샤는 1479년 3월, 또다시 야무나 강으로 나아갔으나 역시나 패배하였다. 3번의 대결에서 연승을 걷은 발룰 샤는 이번에는 역습에 나서 캄필, 파탈리, 샴사바드, 수켓, 콜리, 말하라, 잘레사르를 점령하였고 그렇게 서부 힌두스탄을 평정한 후 자운푸르로 진격하였다. 후세인 샤는 대군을 모아 반격에 나섰지만 센하, 라프리, 라이가온 카가 전투에서 또다시 연전연패하였고 마지막 라합 강 전투에서 대패하여 주력 병력을 잃었다. 이에 자운푸르가 항복하였고, 발룰 샤는 휘하의 무바라크 칸을 그 총독에 봉하였다. 변방으로 후퇴했던 후세인 샤는 병력을 모아 자운푸르로 돌아와 무바라크 칸을 축출하고 수도를 회복했으나, 발룰 샤는 반격에 나서 재차 패퇴시켰다. 그후 후세인 샤는 [[벵골 술탄국]]의 알라웃딘 후세인 샤에게로 망명하여 여생을 보내었다. 한편 자운푸르에 입성한 발룰 샤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카스바 (성채)를 세워 도시를 요새화하고, 여러 모스크 및 마드라사를 더하였다. 이로써 약 한세기 가량 자립해 있던 힌두스탄 주요부가 재차 델리 정권 하에 회복되었고, 발룰 샤의 위세에 괄리오르의 마하라자 만 싱 토마르가 80만 탄카의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